노년의 피아니스트의 손이 건반 위에서 춤추듯 움직인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열정'이 영화관 전체를 울린다
연주를 하는 동안 끊어질 듯 이어지고 숨을 몰아 쉬는 모습에서 약간 좀 아슬아슬 조마조마하다
혹시 건반 위에서 손이 미끄러지는 건 아닐까
박자를 놓치지는 않을까
무사히 연주는 끝났다
내가 안도의 숨을 내 쉬기 전에 피아니스트는 비틀거리며 무대를 떠나고
건물 밖으로 이어진 문으로 뛰쳐나온다
토할 것 같이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 쉬는 모습에 방금 턱시도 입고
우아하게 피아노를 치던 음악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처연한 연민이 느껴지는 노신사로 보인다
모든 예술가들의 은퇴시기는 언제가 적절할까
개인적인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을 우리가 보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이쯤되면 내 영혼에서 더이상 풀어낼 실타래가 없어 하며 절필을 할 수도 있겠고
손가락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머리 속으로 악보가 더이상 외워지질 않아
하면서 은퇴를 선언할 수도 있겠다
피아니스트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케이티홈즈가 기자 헬렌으로 등장한다
그녀 역시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여인으로 인터뷰한 피아니스트의 마스터클래스에도 참가했던 경험이 있다
그 마스터클래스에서 그가 해 주었던 조언들을 마음에 새기며 지금은 기자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이상하게 그녀와 인터뷰를 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그러면서 그녀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던 사건도 생긴다
점점 가까워 지는 두 사람
여기서 두사람의 로맨스를 상상하긴 싫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았음 좋겠다
가끔은 불필요한 애정씬이 영화를 망치기도 한다
어느 연주회를 앞두고 피아노 조율을 끝낸 조율사가 확인을 해 보라고 피아니스를 부른다
모두가 미리보는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기대감을 갖고 주목한다
피아노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는 머리 속이 하얘지며 악보가 생각나질 않는다
당황하고 있는 그 옆에
구원투수처럼 나타난 헬렌이 앉으며
건반을 천천히 누르기 시작한다
하바네라
너무나 익숙한 멜로디에 피아니스트가 곡을 이어받아 연주하기 시작한다
편곡이 재즈풍이어서 너무나 멋진 곡으로 재탄생했다
술잔 들고 게슴츠레 눈 뜨며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싶을 만큼 살짝 퇴페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헬렌의 조언으로 피아니스트가 휴양차 떠난 곳은 스위스의 쉴바플라나 호수가 있는 리조트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클라우드 쉴즈마리아' 의 배경이 된 곳이다
피아니스트는
니체가 묵었던 그 호텔에서 산책을 하며 자신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조직이나 타인에 밀려나지 않고
스스로 정리를 할 수 있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예술가들이
체력이 다하고 기억력이 쇠해 무대가 점점 두려워진다면
아름다움 맺음을 위해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의 영혼을 달래줘야 한다며
끊임없이 그들을 원한다면 그들의 영혼은 누가 달래줘야 하나
예술가들의 아픔을 조금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우리의 박수가 쇠잔한 예술가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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