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고 안전한 사랑의 기억 (엄마 박완서의 부엌) - 호원숙
작가 박완서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글을 저렇게 맛나게 쓸까?
늘 먹는 쌀밥처럼 질리거나 자극적이지 않는 맛이 언제나 좋았다
작가의 데뷔작인 나목에서부터 참 많이도 찾아 읽었다
이번엔 작가의 딸 호원숙이 쓴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란 부제가 붙은 책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란 책을 읽는다
사실 박완서작가의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음식이야기는 너무나 빈번히 등장한다
특히 음식 이야기의 절정은 대하소설 <미망>에서 보여준다
미망은 개성에서 살았던 한 가문의 이야기를 엮은 대하소설이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서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진 못하는데
음식이야기 만은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설을 준비하는 음식
손님 대접을 위한 음식
혼례식 때 준비하는 특별한 음식 등
제법 산다는 사람들의 집에서 해 먹는 다양한 음식에 대한 설명이
읽는 도중 내내 군침 돌게 했다
내가 전혀 접하지 못한 음식들도 많아 궁금증과 함께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엄마를 기억하는 호원숙 작가의 글 역시 엄마의 부엌이야기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주제 선정이었을 게다
나박김치를 담그려고 미나리를 다듬다가도 엄마의 글을 생각한다
"자고 깨면 춥고, 자고 깨면 여전히 춥건만 설마 내일을 풀리겠지, 설마 겨울 다음엔 봄 안 올까, 하는 끈질긴 낙천성만이 그들의 것이었다"
만두를 먹다가도 엄마의 나목 한 귀절
"개성 만두는 생김새부터가 유머러스 하거든요. 소를 볼록하게 넣어 아무리고 양끝을 뒤로 당겨 맞붙이면 꼭 배불뚝이가 뒷짐 진 형상이 돼요"
맞아맞아 하면서 만두가 먹고 싶어진다
소설 <그 남자네 집> 에서 언급한 민어 이야기도 기억해 낸다
"나는 마치 기싸움이라도 하듯이 민어의 눈과 장사꾼의 눈을 번갈아 보면서 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며느리가 들고 온 민어를 손질하며 다 손수하는게 그렇게 신바람 나 보일 수가 없었다는 대목을 되뇌이며
호원숙 본인도 식구들을 위해 민어를 갈무리해 놓고 동생들을 기다린다는 대목에서
음식에 대한 대물림을 엿볼 수 있다
호원숙 본인의 시댁에서 배운 음식을 엄마에게 해 드렸던 기억도 있다
"새로 지은 밥을 강된장과 함께 부드럽게 찐 호박잎에 싸 먹으면 밥이 마냥 들어간다"
호원숙 작가는
머윗대가 굵어지면 푹 삶아 질긴 껍질은 벗겨내고 하얀 줄거리를 결대로 죽죽 찢어 초고추장에 무쳐 엄마에게 드렸더니 밥 한공기를 그냥 비울정도로 좋아하셨다는 회상을 한다
나를 돌아보니
엄마가 해주신 음식은 기억에 많이 남는데
내가 엄마한테 해 드린 음식은 없다는 게 너무 부끄럽다
두 작가의 음식레시피를 보면서
음식에 대한 접근이 매우 철학적이란 걸 느낀다
그저 귀찮고 끼니를 때우기 위한 최소한의 조리과정만으로 살아온 나로서
두 모녀를 따르기는 어렵다
이제 호원숙 작가 본인도 어느 덧
아이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 음식에 대한 철학을 버리지 못한다
제목처럼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대단히 성공한 엄마다
나는 성공한 엄마는 되기 힘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