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박수근, 소설가 박완서 - 두 '나목' 이야기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등단한 박완서님의 나목을 읽을 때는
책 제목인 나목이 박수근화백의 나목과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지금이야 인터넷이나 기타 매체의 발전으로
등단한 작가의 다양한 인터뷰나 책 소개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쳐나지만
그 무렵엔 그저 늑깎이 주부의 여성지 공모 당선작 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녀 소설에 대하 배경도 잘 알지 못했다
오래전의 글이라서 세부적인 것 까진 기억나지 않고
미군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부서에서 일하는 주인공과
궁기 흐르는 화가들(환쟁이)
그 속에서 전쟁을 견뎌내는 암울한 이야기 정도였다
나중에 그 화가들 중 남다르게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한사람이 박수근화백 이었고
실제 미8군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주인공 역시
작가의 실제 모습에 약간의 픽션을 얹은 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 박완서야 그 후 수많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존속 가족사에서부터 세계관, 가치관까지 모두 다 알게 될 때까지
그녀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녀의 작품은 매일 먹는 밥같은 느낌을 준다
자극적이지 않고 먹어도먹어도 물리지 않는 그런 음식같은 이야기
덕수궁에서 열린 박수근 전시회를 다녀와서 박완서의 데뷰작인 나목을 다시 찾아읽었다
옥희도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박수근화백의 이야기 부분도 더 꼼꼼히 읽어보았다
미군부대에서 척박하게 일하고 있는 주인공에겐
화가 박수근은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존재였다
거기에 살짝 로맨스까지 얹으니(픽션) 읽는 내내 두사람의 관계를 상상하게 된다
그 시대의 젊은 처자가 갖기엔 꽤나 대담한 행보에 놀라기도 하고
그 당돌함마저 느껴지는 말들에
두 사람의 로맨스를 은근 각색해가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드라마 속의 부부역을 사실로 오해 해
다른 드라마에서 또다른 상대역과 나오는 것을 끝까지 이해 못하시고
쯧쯧 부인이 있는 남자가..
저 여자는 왜 또 다른 남자를 만나고 그래 ~~
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며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저렇게 쓸쓸한 고목을 그리는 가슴은 얼마나 메말라 있는 것이냐며
마치 그의 아내가 그렇게 만들기라도 한 듯
쌀쌀맞은 어투로 아내에게 쏘아 주던 그 화제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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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 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닮도록 절실하다
***************************************************(나목 본문 중 발췌)
나중에 결혼을 한 주인공이 박수근 화백의 개인전에 찾아가 회상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박수근 화백의 나목을
다 메말라 윤기잃은 고목으로 본 것이다
마지막 낙엽을 끝내고 홀가분하게 겨울을 맍는
그 깊은 수심에 봄의 향기를 가득 담고 있는 나목을 다시 본 것이다